기독교와 자유주의: 복음을 뛰어넘는 다른 종교의 매력과 유혹 서평

작성자: James Park

필자는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메이첸 교수가 기독교와 자유주의의 관련성이나 공통분모 적인 내용을 다룬 책이라고 오해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보니, 제목부터가 참 공격적이다. 복음주의와 자유주의가 아니라, 기독교와 자유주의라는 제목 자체가 이미 자유주의는 기독교라는 경계선 밖에 있는 다른 복음 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갈라디아서에서 사도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이라는 표현을 참 좋아한다. 다른 복음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가짜’, ‘흉내 내는 것’, ‘그런 척 하는 것’, 영어로는 ‘Pretending’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복음 같지만 복음이 아니고, 기독교 같지만 기독교가 아니며, 예수님의 그림자는 있지만 실체는 없는 그런 것이 바로 다른 복음이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자유주의’라 표현한다. 메이첸 교수의 표현이 공격적이기에 나도 공격적으로 서론을 시작하고 싶었다. 자유주의는 기독교가 아닌 또 다른 종교의 창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예 다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1장 6~7절

내가 목회하고 있는 캐나다는 심각한 자유주의 물결로 기독교가 이미 심각하게 무너져 있는 상태이다. 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캐나다 연합교회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싶다. 특별히, 캐나다 내에서 가장 큰 교단 중의 하나인 캐나다 연합교회는 대표적인 자유주의 교단으로 알려져 있 다. 이 교단은 성경의 정확 무오를 인정하지 않으며, 모든 동성애의 이슈를 찬성하는 교단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서 Context에 따라서 얼마든지 Text를 마음대로 해석하고 취사 선택하며 심지어는 바꿔 버리기까지 한다. 한가지 예를 든다면 창세기 2장 24절의 말씀은 명백하게 남자와 그의 아내(여자)가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룬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뜻은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며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구성원은 반드시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캐나다 연합교회는 ‘결혼’에 대한 입장을 ‘연합교회는 다음을 축하(celebrate)합니다: 동성 커플(same-sex couples)’ 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메이첸 교수가 이미 100년 전에 기독교 안에 스며들어오는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싸웠던 배경과 스토리를 우리가 그의 책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며 영광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시작한 싸움의 결과는 현재 너무도 처참하다. 안타깝게도 미국에서 가장 많은 교세를 자랑하는 UMC(United Methodist Church)와 PCUSA(Presbyterian Church (U.S.A.)) 와 같은 교단들이 가장 큰 교단들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언급했던 캐나다 연합교회도 캐나다에서 가장 큰 교단 중에 하나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대부분의 기독교가(대략 80% 이상)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기독교가 아닌 자기들만의 새로운 종교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고 또 연구하여 예수님 중심의 복음(Jesus-Centered)으로 자기 멋대로의 종교(Self -Centered)와 맞서 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최근 보고에 따르며 미국의 PCA(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교단이 최근 몇 년 동안 성장하고 있다는 뉴스는 우리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야할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임을 기억하고 끝까지 다른 복음의 유혹과 시험에 넘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자.

메이첸 박사는 서론의 내용을 통해서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서 분명하게 선을 그어 말한다. 그는 종교적인 문제를 결정지으려 하는 것이 아닌,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혹은 전혀 모르고 있는 자유주의의 문제를 가능한 한 예리하고 분명하게 보여주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것은 명백하게 메이첸이 살았던 시대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이미 교회의 대부분에 잠식해 버린 자유주의 종교의 실체를 알고 진짜 기독교, 진짜 복음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돌이켜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먼저 건강하고 성경적인 교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날카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기독교는 교리가 핵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교리가 흔들려 전적인 그리스도의 은혜가 사람의 공로가 섞여버린 은혜로 전락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갈라디아서에서 나오는 유대주의자들의 다른 복음에 맞서서 싸우는 바울의 주장과 동일하다. 명백하게 기독교는 교리의 종교임을 보여준다. 그 교리가 흔들리고 달라지고 변질이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독교라고 부를 수 없는 또 다른 종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사회의 청중들은 ‘교리’를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긴다. 그런 흐름에 맞추어 자유주의 설교자들은 충분히 청중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다른 복음을 섞어서 그것인 마치 기독교의 교리인 것처럼 가르치고 세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절대 인간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에 근거하여 제시되는 삶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부여 받은 의롭다 칭함을 받아 완전히 변혁된 신분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것은 겉으로는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면 되는 것인가 아닌가? 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나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며 이것은 명백하게 다른 교리이다. 이처럼 메이첸 교수는 기독교의 교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사역에 근거한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의 진리로 말하고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제 구체적으로 메이첸 교수는 신론과 인간론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 기독교적 시각을 명확하게 해야함을 가르쳐 준다.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에 대해서 교리적인 문제들에 연장선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아버지되심과 거기에 따라오는 사람들끼리의 교제와 관계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인간에 대한 설명에서는 자유주의는 인간이 하나님의 의로운 정죄 아래 있는 죄인이 아니라 죄라는 것 자체가 없는 선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설교는 죄로부터 절망을 하는 성도들이 바로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인간이 충분히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스스로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메이첸 교수는 계속해서 자유주의자들의 설교가 사람들에게 죄의 찔림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자기 스스로 하려고 하는 엄청난 실책에 빠져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성경에 대해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한다. 성경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것 외에 다른 것은 없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계속해서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린다. 왜 왜 우리가 오래전에 기록된 책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면서 다른 곳에서 구원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대한 오류와 문제점을 찾아내어 공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중요한 역사에 대한 기록이고, 그 기록이 모두 참되며, 사람 저자들이 오류로부터 완전히 지켜져서 그들의 생각과 표현의 습관이 온전히 유지되면서도, 그들의 믿음과 행위의 무오한 규칙이 되어 쓰여진 것이 바로 성경이다. 메이첸은 기독교는 정확무오한 계시 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으로 세워져 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자유주의는 죄인 된 사람들의 감정과 경험에 의지 된 종교라며 비판한다.

이어서 그는 그리스도, 구원에 관하여 자유주의와 대조하여 설명한다. 먼저 그리스도에 대해서 기독교의 입장은 명백하게 예수는 단순한 의의 선생이 아니라, 그저 새로운 유형의 종교적 생활을 개척한 사람이 아닌, 사람들의 신뢰와 더불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실 구주로 여긴 인물이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예수와의 종교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단순히 예수는 그들에게 모범의 대상이 될 뿐 믿음이나 의지할 대상 혹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와의 관계를 맺는 삶이 아닌 단순히 만들어진 규범을 지켜내는 종교적 생활을 유지하는 방향성을 가지는 오류를 범했다. 구원의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자유주의는 구원을 사람으로부터 찾으려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서 찾게 된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우리의 죄책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담당하신 것을 토대로 우리의 구주가 되시지만, 그러나 자유주의는 예수가 살았던 삶에 대한 규범을 만들어 그것과 같은 종류의 삶을 사는 것을 구원이라 말한다. 결국, 예수의 속죄 이론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기독교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질 하늘나라에 포커스가 되어있다면, 자유주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교회에 대한 입장이다.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자유주의가 잠식해 있는 교회의 사명,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복음을 지적으로 변호하는 태도이며, 진리를 붙들고 끝까지 싸우고 투쟁해야 한다. 또한 교회 안에 세워질 리더들과 목회자들의 자질을 판단해야 한다. 그들의 사역과 설교가 올바른 십자가의 진리를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 안의 성도들의 무지가 끔찍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기독교가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날의 나의 목회 방침에 대해서 큰 회의를 느꼈다. 나는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면서도 이미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에 물들어 있었던 목회자임을 발견한 것이다.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편안하게 오도록 애를 썼으며,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것만으로 큰 의미를 부여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그리스도인 흉내를 내기 위한 혹은 종교적 신경안정제를 너무도 쉽게 제공하는 틀을 제시 했던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설교 중에 가능하면 초신자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그들의 신앙생활이 행복하고 즐겁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도 인간적인 접근이었다. 교회는 설교는 죄인이 절망하고 돌아가야 하는 곳이 분명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교리가 올바로 선포되어야만 했다. 메이첸 교수의 책을 읽으며 이 책이 100년 전에 쓰여졌음에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 교회의 문제와 완벽하게 적용됨이 소름 돋게 놀라웠다.

우리가 기억하는 유명한 사람들이 있다. 20세기 C.S 루이스라는 별명을 가진 팀 켈러, 그리고 지금도 웨스트민스터에서 가르치고 있는 마이클 호튼, 그러나 사실 이런 사람들을 배출해낸 근원에는 메이첸 교수가 있었으며 그를 통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의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아, 이 책을 읽는 모든 후배 목회자들이 예수님 중심의 사역과 목회 그리로 설교를 하게 되기를 소원한다. 사람들을 더 많이 불러모을 만한 매력적인 교회를 세팅하는 사역전문가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도 나 홀로 주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길, 그리고 그것이 기쁘고 즐겁게 되기를 소망한다. 마치 하박국 선지자가 고백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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